성인이 되고 나서 부모님과 여행을 떠나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몇 년 전 5월, 부모님과 셋이서 제주도 동쪽을 3박 4일로 돌았습니다. 동생은 일정이 안 맞아 함께 못 간다고 해서 '세 명이면 훨씬 오붓하고 여유롭겠지' 생각했었는데 막상 마주한 현실은 생각했던 것과 달랐습니다. 효도 여행인 듯 고행길이었던, 하지만 지금은 웃으며 추억하는 제주도 3인 가족 여행의 진짜 이야기를 시작해 봅니다.
📌관광 동선
제주 동쪽 여행의 핵심은 동선 설계에 있습니다. 제주도 동쪽은 조천, 선흘, 구좌, 성산 권역으로 이어지는 이동 축(axis)이 뚜렷해서, 이 흐름을 따라가면 겹치는 이동 없이 알차게 돌 수 있습니다.
저는 처음 제주도 여행 계획을 짤 때 하루 관광지 2~3곳에 카페 한 곳, 식당 두 끼 정도로 여유 있게 구성했습니다. 부모님 체력을 고려한 선택이었는데, 아빠가 "왜 이것밖에 안 가냐"며 계속 장소를 추가하시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3박 4일 여행을 못 버티지 않을까 했는데, 결국 이틀째 저녁쯤 아빠가 "다리 아프다"라고 하셔서 "아니, 아빠가 그렇게 가자고 하셨잖아요"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이번에 했던 여행 동선은 아래와 같으니 참고 바랍니다. 저는 여행 중에 장소가 추가되어 동선이 좋지 않으니 조천, 성산, 서귀포 이렇게 이동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 1일 차: 제주공항 → 조천 (이호테우 해변, 함덕 해수욕장 방면) → 서귀포
- 2일 차: 서귀포 (주상절리, 천지연폭포, 천제연폭포) → 산굼부리 → 성산
- 3일 차: 성산 (성산일출봉, 아쿠아리움, 섭지코지) → 비자림 → 동문시장 → 숙소
- 4일 차: 용두암 → 공항
첫날 이호테우 해변에서 붉은 조랑말 등대 앞 인증샷을 찍었는데, 엄마가 그렇게 좋아하실 줄 몰랐습니다. 소소해 보여도 직접 가보면 바다와 등대가 어우러지는 장면이 꽤 인상적입니다. 다음 날은 아빠의 추가 요청 덕분에 주상절리, 천제연폭포, 천지연폭포, 산굼부리까지 모두 찍었는데 운전하신 아빠가 가장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제가 직접 다녀보니 관광지 네 곳을 하루에 다 소화하는 건 성인도 꽤 힘듭니다. 딱 두 곳만 골라도 충분합니다.
성산일출봉(Seongsan Ilchulbong)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UNESCO World Natural Heritage)으로 등재된 곳입니다. 정상까지 왕복 약 40분 거리인데,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올라가다가 중간쯤에서 진짜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정상에 서면 성산 앞바다와 우도가 한눈에 보이고, 그 순간의 시원함이 올라오는 고생을 전부 씻어줍니다. 옆에서 중학생 단체가 뛰어 올라가는 걸 보고 나도 모르게 속으로 "역시 애들은 다르구나" 했습니다. 성산일출봉 아래로 내려가면 보트를 타는 곳이 있습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보트를 니 오랜만에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맛집과 숙소
여행에서 맛집과 숙소는 단순한 식사·취침 공간이 아닙니다. 가족 여행에서 특히 그렇습니다. 하루 이동을 마치고 밥 한 끼가 만족스러우면 피로가 절반은 풀리고, 숙소가 아늑하면 다음 날 출발이 가볍습니다.
제주 동쪽 맛집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교래리 토종닭 백숙입니다. 같은 팀 대리님이 꼭 가보라고 했을 때는 그냥 흘려들었는데, 막상 먹어보니 왜 추천했는지 바로 알았습니다. 토종닭은 육질이 일반 닭에 비해 탄력이 있고 국물 깊이가 다릅니다. 부모님 두 분 모두 "이게 진짜 닭 맛이다"라고 하실 정도였습니다. 마지막 날 아침에는 우진해장국에 들러 고사리 육개장을 먹었습니다. 유명한 집이라는 건 알고 갔는데 사람이 그 정도로 몰려 있을 줄은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15분 정도 기다려서 들어갈 수 있었는데, 고사리 육개장의 비주얼이 국밥보다는 죽에 가깝게 보였습니다. 이 점성이 한 숟가락 뜰 때마다 재료 맛을 더 진하게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동문시장에서의 저녁 식사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제주도까지 와서 회를 빠뜨리면 섭섭하잖아요. 딱새우회를 주문했는데 아빠가 취향이 아니라고 하셔서 조금 아쉬웠지만, 광어회는 세 명 모두 만족했습니다. 딱새우회는 특유의 단맛이 강해서 호불호가 갈리는 편인데, 육지에서는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기 때문에 꼭 먹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오후 늦게 장미꽃으로 유명한 카페인 북촌에 가면에 들른 날, 엄마가 꽃 앞에서 연신 사진을 찍으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아빠는 음료를 빠르게 드시더니 꽃구경에 생각보다 오래 머무셨습니다. 그 장면이 이번 여행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숙소는 3박 4일 동안 모두 다른 곳에 머물렀는데 주차가 가능한 호텔로 예약을 했습니다. 방은 일부러 부모님과 다른 방으로 예약을 했습니다. 오랜만에 부모님과 함께 자볼까 고민을 하다가 아빠 코 고는 소리에 잠을 못 잘 것 같아 그렇게 선택했습니다. 결론적으로 그렇게 예약한 덕분에 모두 컨디션을 잘 유지하며 만족스럽게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기 전까지 부모님 방에서 간식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다가 자기 전에 방으로 이동을 해서 서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과 처음 함께 간 제주도 여행이었는데,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진작 같이 올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빠와 여행 취향이 완전히 맞진 않았지만, 여행 중에 벌어졌던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이 오히려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동생도 다음엔 함께 가면 좋겠다 싶었고요. 제주 동쪽을 계획 중이시라면, 일정은 여유 있게, 동선은 한 방향으로, 그리고 하루에 여러 곳을 가려고 욕심내지 않는 것을 권합니다. 그게 제가 직접 겪고 나서 내린 결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