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카이 화이트비치의 4km 백사장은 서울 종로구 면적의 40%밖에 안 되는 작은 섬에 있습니다. 석사 논문을 마치고 처음으로 떠난 해외여행지였는데, 그 작은 섬에서 2년 동안의 실험실 생활의 스트레스와 피로를 다 날려버릴 수 있었습니다. 수영을 못하지만 래시가드와 수영복을 챙겨간 건 보라카이 바다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입니다.

✈️보라카이 접근성
보라카이는 필리핀 중부 비사야 제도(Visayas)에 위치한 10.32km² 면적의 섬입니다. 여기서 비사야 제도란 필리핀 중부 지역을 이루는 중간 크기 섬들의 집합을 의미하며, 세부·보홀과 함께 필리핀 3대 휴양지로 꼽히는 지역입니다.
공항에서 섬까지 가는 과정이 제 첫 해외여행의 첫 관문이었습니다. 칼리보 국제공항(Kalibo International Airport)에 도착한 뒤 2시간 가까이 차를 타고 카티클란 선착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좁은 시골길을 달리는 내내 '과연 제대로 가고 있나' 싶었죠. 선착장에서는 환경세·입도세·보트 티켓을 합쳐 500페소를 내고 방카보트(Bangka boat)를 탔습니다. 방카보트란 필리핀 전통 목조 보트에 아웃리거(outrigger)라는 좌우 보조 부재를 단 배로, 파도가 쳐도 전복되지 않도록 설계된 구조입니다.
직항편이 있는 칼리보 루트를 선택했지만, 공항에서 숙소까지 도착하는 데만 3시간 이상 걸렸습니다. 카티클란 공항을 이용하면 이동 시간은 줄지만 마닐라 경유가 필수라 결국 비슷하게 피곤합니다. 제 경험상 이 접근성 문제는 보라카이 여행의 가장 큰 허들이었습니다. 부모님과의 여행이었다면 보라카이는 고려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추가로 확인해야 할 이동 팁은 다음과 같습니다.
- 사우스웨스트(Southwest) 예약: 가장 대중적인 방법으로, 공항 입구부터 호텔 로비까지 'Door-to-Door'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가격은 약 2~3만 원대)
- 트라이시클 합승: 카티클란 공항 이용 시 유용하며, 현지 분위기를 느끼기에 좋지만 짐이 많다면 비추천합니다.
- 럭셔리 리조트(샹그릴라, 크림슨 등): 자체 선착장과 전용 픽업 서비스 제공
🪙보라카이 물가
보라카이에서 1박 20만 원대 숙소를 예약했는데, 룸 컨디션은 태국이나 베트남의 7만 원대 호텔과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작은 섬이라 물류비가 추가된다는 점은 이해했지만, 체감 물가는 예상보다 높았습니다.
화이트비치 스테이션 2(Station 2) 근처 디몰(D'Mall)에서 생수 한 병에 50페소, 간단한 식사는 300페소 정도였습니다. 전반적인 식비와 액티비티 비용은 다른 동남아 휴양지보다 20~30% 비쌌습니다.
럭셔리 리조트 가격대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샹그릴라 보라카이(Shangri-La Boracay)는 1박 60만~70만 원을 호가하는데, 세부 막탄의 샹그릴라보다 30% 이상 비쌌습니다. 퀄리티가 그만큼 월등한지가 너무 궁금했습니다. 제가 묵은 스테이션2 근처의 가성비 리조트도 해변 접근성은 좋았지만 시설 노후도가 느껴졌고, 그에 비해 가격은 프리미엄이 붙어 있었습니다.
다만 마사지만큼은 예외였습니다. 논문 쓰느라 뭉친 어깨와 허리를 1시간 동안 시원하게 풀어주는데 2만 원 초반이라니, 이건 정말 만족스러웠습니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 받는 전신마사지는 피로를 완전히 녹여주는 경험이었습니다. 마지막 날도 그냥 떠나기 너무 아쉬워 마사지를 받고 공항으로 이동했습니다. 보라카이에 머물렀던 동안 마사지를 2번밖에 받지 못한 게 너무 아쉬웠습니다.
⛵보라카이 액티비티
보라카이에서 제가 선택한 액티비티는 파라세일링(Parasailing)과 선셋보트(Sunset Boat)였습니다. 파라세일링은 보트에 연결된 낙하산을 타고 상공 50~80m까지 올라가 화이트비치 전경을 볼 수 있는 액티비티입니다. 수영을 못하는 저는 겁이 나긴 했지만, 구명조끼를 입고 안전 브리핑을 듣고 나니 안심이 되었습니다. 상공에서 본 에메랄드 빛 바다와 4km에 걸친 백사자은 정말 멋있었습니다. 화이트비치는 서향이기 때문에 오후 햇빛을 받으면 바다가 반짝거리며 색이 변하는데 정말 신기하고 예뻤습니다. 이 모습을 내려다보면서 '여기가 진짜 천국이구나' 싶을 정도로 비현실적이었습니다. 파라세일링 비용은 2,000~2,500페소(약 5만 원) 정도였는데, 10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충분히 값어치를 했습니다.
선셋보트는 스테이션 1 아스토리아 호텔(Astoria Hotel) 앞 간이 선착장에서 출발했습니다. 20~30명이 함께 타는 대형 보트에서 음악을 틀고 춤을 추며 일몰을 감상하는 프로그램인데, 솔직히 처음엔 '이게 뭐가 재밌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수평선에 걸린 붉은 해가 서서히 내려앉고 하늘이 주황·보라·분홍으로 시시각각 바뀌는 순간, 그 낭만에 완전히 빠져들었습니다. 논문 마감 직전까지 실험실에만 박혀 있던 제게 이런 여유와 멋있는 광경은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호핑투어(Hopping Tour)도 보라카이의 인기 액티비티입니다. 화이트비치 앞바다에서 스노클링을 하고, 크리스탈 코브섬(Crystal Cove Island)과 매직 아일랜드(Magic Island) 같은 작은 섬들을 돌아보는 코스입니다. 화이트비치는 모래 바닥이라 물고기가 적지만, 호핑투어로 조금만 나가면 산호와 열대어를 볼 수 있습니다. 바다뱀도 있다고 하니 바닥까지 내려가지 않는 게 안전하다고 합니다. 수영을 못해서 호핑투어를 신청하지 않았는데 돌아와서 생각하니 그래도 한 번 해볼걸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라카이 섬 내 이동은 트라이시클로 통일됩니다. 스테이션 1~3 구간 합승은 인당 15페소, 대절은 150페소입니다. 저는 대부분 화이트비치 비치로드(Beach Road)를 걸어 다녔는데, 차량 통행이 금지된 모래길이라 맨발로 걸어도 괜찮았습니다.

보라카이 여행을 마치고 필리핀 새벽 비행편으로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7시간을 비행기에서 보내니 피로가 몰려왔지만, 화이트비치의 에메랄드빛 바다와 선셋은 그 피로가 생각나지 않을만큼 멋있는 광경이었습니다. 접근성과 물가는 아쉽지만, 휴식이 절실한 순간이라면 보라카이는 여전히 좋은 선택지입니다. 저도 언젠가 다시 찾아가고 싶은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