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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여행 후기 (곤돌라, 무라노섬, 카니발)

by loopyjjoa 2026. 3. 6.

베네치아에서 곤돌라를 타지 못한다면 후회할까요? 일반적으로 베네치아 여행의 필수 코스로 곤돌라가 꼽히지만, 제 경험상 곤돌라를 타지 않아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여행이 가능했습니다. 저는 2024년 2월, 베네치아 카니발 시즌에 맞춰 이 물의 도시를 방문했습니다. 혼자 여행하는 입장에서 1인당 80유로가 넘는 곤돌라 비용은 부담스러웠고, 결국 타지 못했지만 그 대신 바포레토(수상버스)를 타고 대운하를 따라 이동하며 베네치아의 진짜 모습을 더 가까이서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베네치아 여행 후기 (곤돌라, 무라노섬, 카니발)

 

곤돌라와 바포레토

베네치아에서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은 바포레토입니다. 바포레토는 원래 이탈리아어로 '증기선'을 뜻하지만, 지금은 베네치아의 수상버스를 가리키는 말로 쓰입니다. 1번 노선은 대운하(Canal Grande)를 관통하며 주요 명소를 연결하는데, 저는 이 노선을 타고 베네치아의 전경을 감상했습니다. 한강 유람선과는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고, 해질녘에 잘 맞춰서 타면 운하 위에서 노을을 감상하며 낭만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일반적으로 곤돌라가 베네치아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바포레토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습니다. 곤돌라는 30~40분 탑승에 80~100유로(약 12만원)가 넘는 반면, 바포레토는 1일 패스 25유로(약 3만 5천원)로 무제한 이용이 가능했습니다. 혼자 여행하는 입장에서 곤돌라 비용은 상당한 부담이었고, 함께 탈 일행을 구하기도 쉽지 않아 결국 타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곤돌라를 꼭 타보고 싶습니다.

베네치아에서 놀랐던 것 중에 하나는 베네치아 시내 곳곳이 물에 잠기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제가 간 기간은 아쿠아 알타(Acqua Alta) 시즌으로 강한 남풍과 만조가 겹쳐 바닷물에 잠기는 현상을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현지인들은 익숙한 듯 장화를 신고 다니고 주요 동선에는 임시 발판이 설치되어 있어 다니기엔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어떻게 다녀야 될지 걱정을 했었는데 다니다 보니 재미있고 특별한 경험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라노섬과 부라노섬

베네치아 본섬에서 바포레토를 타고 30분 정도 가면 무라노섬(Murano)에 도착합니다. 무라노섬에 가기 위해 선착장에 갔을 때 바포레토를 타려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아 일찍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라노섬은 베네치아 유리공예의 본고장입니다. 1291년, 베네치아 정부는 화재 위험과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해 모든 유리 공방을 이 섬으로 강제 이주시켰습니다.

섬 곳곳에는 유리공방이 있고, 대부분 관광객에게 무료로 제작 과정을 시연해 줍니다. 저는 한 공방에서 마에스트로(maestro)가 1,200도의 용광로에서 녹인 유리를 불어서 꽃병을 만드는 과정을 지켜봤습니다. 여기서 마에스트로란 최소 20년 이상 경력을 쌓은 유리공예 장인을 가리키는 이탈리아어 존칭입니다. 불과 5분 만에 형태도 없던 유리 덩어리가 정교한 작품으로 변하는 모습이 정말 신기했습니다.

무라노섬에서 다시 바포레토를 타고 20분 정도 가면 부라노섬(Burano)이 나옵니다. 부라노섬은 알록달록한 색깔의 집들로 유명한데, 실제로 보니 사진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습니다. 배경이 예뻐서 그런지 찍는 사진마다 너무 잘 나와서 만족스러웠습니다. 부라노섬에 있는 집들은 각각 빨강, 노랑, 초록, 파랑 등 서로 다른 색을 칠해놓았는데, 이는 원래 어부들이 안개 낀 날에도 자기 집을 쉽게 찾기 위해 시작된 전통이라고 합니다.

부라노섬에서 주의할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 주말이나 카니발 기간에는 관광객이 몰려 사진 찍기가 어려움
  • 오전 10시 이전이나 오후 4시 이후가 상대적으로 한산함
  • 레이스 제품이 유명하지만 가격은 상당히 비싼 편

 

베네치아 카니발

제가 베네치아를 방문한 가장 큰 이유는 베네치아 카니발(Carnevale di Venezia)이었습니다. 2월 중순에 열리는 이 축제는 중세 시대부터 이어진 베네치아의 대표 축제입니다. 카니발 기간 동안 산마르코 광장은 화려한 의상과 가면을 쓴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일반적으로 베네치아 카니발은 관광객을 위한 상업적 축제라는 의견도 있지만, 실제로 경험해 보니 베네치아 시민들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즐기는 모습이었습니다. 중세 귀족 의상을 완벽하게 재현한 복장을 입은 사람들 대부분이 현지인이었고, 이들은 기꺼이 관광객과 함께 사진을 찍어주었습니다.

저도 리알토 다리(Ponte di Rialto) 근처 상점에서 간단한 가면을 구입해 착용했습니다. 트리코르노(tricorno)라 불리는 삼각 모자와 검은 망토, 그리고 흰색 바우타(bauta) 가면 세트를 50유로에 샀는데, 나도 축제에 참여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너무 떨렸습니다. 여기서 바우타란 베네치아 전통 가면의 한 종류로, 턱 부분이 돌출되어 가면을 쓴 채로도 먹고 마실 수 있도록 디자인된 것이 특징입니다. 카니발의 하이라이트는 '천사의 비행(Volo dell'Angelo)' 행사였습니다. 산마르코 광장의 종탑에서 와이어를 타고 내려오는 퍼포먼스인데, 이날은 유명 오페라 가수가 천사 역할을 맡았습니다. 수만 명의 인파가 광장을 가득 메운 가운데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장면은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축제는 예상보다 크고 화려해서 놀랐습니다. 단순히 가면을 쓰고 사진 찍는 정도의 축제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베네치아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진지한 문화 행사였습니다. 베네치아 시민들이 1979년 자발적으로 부활시킨 이 축제는, 단순한 관광 상품이 아니라 그들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수단이었습니다.

 

베네치아 여행을 마치며 느낀 점은, 이 도시는 유명 관광지를 체크하는 방식으로는 제대로 경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곤돌라를 타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그 대신 바포레토를 타고 현지인들 사이에 섞여 이동하고, 카니발 기간에 맞춰 방문해 축제에 직접 참여한 경험이 훨씬 값졌습니다. 다음에 베네치아를 다시 방문한다면 곤돌라도 타보고 싶지만, 그보다는 베네치아 국제영화제(Venice Film Festival) 기간에 맞춰 가서 또 다른 베네치아의 모습을 경험하고 싶습니다. 베네치아는 단 한 번의 방문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매번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도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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