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에 강화도만 한 섬나라가 있다는 걸 아시나요? 저도 친구가 어학연수를 간다고 해서 처음 알게 된 나라가 바로 몰타였습니다. 5월에 방문했는데 솔직히 예상보다 훨씬 매력적인 곳이었습니다. 특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발레타 구시가지와 에메랄드빛 코미노 섬은 제가 왜 18시간을 비행했는지 알게 해준 곳들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직항이 없어 터키를 경유해야 했지만, 도착하자마자 펼쳐진 풍경에 피로가 싹 가시더군요.

✈️발레타 유적
발레타로 들어가려면 깊이 18미터 해자를 건너야 합니다. 여기서 해자(moat)란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곽 주변에 파놓은 인공 수로를 의미합니다. 작은 섬나라라는 지리적 한계 때문에 몰타는 도시 전체를 요새화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1980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됐습니다.
어퍼 바라카 정원에 올라가니 지중해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제가 이곳을 찾은 진짜 이유는 매일 낮 12시에 진행되는 예포 발사 행사(saluting battery) 때문이었습니다. 예포 발사란 과거 군대에서 경례나 의식용으로 쏘던 대포 발사를 재현하는 퍼포먼스입니다. 짧은 행사였지만 몰타의 전쟁 역사를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성 요한 대성당은 외관만 보면 평범해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입이 떡 벌어집니다. 바닥에는 성 요한 기사단원들의 묘비가 깔려 있고, 천장과 벽은 온통 금색 바로크 장식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8개국에서 모인 기사단을 하나로 결집시키기 위해 일부러 화려하게 꾸몄다고 하더군요. 여기서 제가 꼭 보고 싶었던 건 카라바조의 작품이었습니다. 카라바조의 대표작 '세례 요한의 참수'를 실물로 마주했을 때 정말 소름이 돋았습니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작품을 이렇게 가까이서 볼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바로크 미술의 특징인 강렬한 명암 대조(chiaroscuro)가 세례 요한의 목이 베이는 순간을 더욱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키아로스쿠로란 빛과 어둠을 극단적으로 대비시켜 입체감과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회화 기법입니다. 발레타는 관광객들을 위한 여러가지 교통수단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 발레타에서 꼭 체험해봐야 할 교통수단이 있습니다:
- 전통 배 루주(Luzzu): 알록달록한 색상과 선수에 그려진 눈 문양이 특징
- 페리: 단돈 2유로로 항구를 가로지르며 지중해 풍경 감상
- 마차: 중세 분위기를 느끼며 구시가지 투어 가능
저는 루주를 타고 항구를 건넜는데, 짧은 거리였지만 푸른 바다 위를 달리는 기분이 정말 상쾌했습니다.
코미노 섬
제가 몰타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곳이 바로 코미노 섬이었습니다. 고조 섬에서 페리를 타고 20분 정도 가면 도착하는데, 멀리서부터 에메랄드빛 블루라군(Blue Lagoon)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블루라군이란 얕고 맑은 바다가 만들어낸 자연 수영장 같은 지형으로, 코미노 섬의 가장 유명한 명소입니다.
5월이라 수온이 좀 차가웠지만, 투명한 바닷물을 보니 안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물속에 들어가자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차가웠지만 동시에 상쾌했습니다. 바위 사이로 헤엄치는 물고기들이 훤히 보일 정도로 물이 맑았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사진으로만 보던 풍경이 실제로는 훨씬 더 아름다웠거든요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한여름이 아니라서 물놀이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는 겁니다. 7~8월에 오면 수온이 25도 이상으로 올라가 훨씬 편하게 수영할 수 있다고 합니다. 다음에 다시 온다면 여름에 와서 하루 종일 물놀이를 즐기고 싶습니다.
고조 섬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몰타 본섬에서 페리로 20분 거리에 있는 고조 섬은 본토보다 훨씬 한적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였습니다. 특히 택시투어를 진행해주신 기사님의 꿀팁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제가 방문한 즈간티아 신전(Ggantija Temples)은 기원전 3600년경에 지어진 거석 신전입니다. 즈간티아는 '거인'이라는 뜻인데, 여성 거인이 신전을 세웠다는 전설이 내려옵니다.
여기서 거석 신전(megalithic temple)이란 거대한 돌을 쌓아 만든 선사시대 종교 건축물을 말합니다. 몰타에는 총 7개의 거석 신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는데, 이집트 피라미드보다도 오래된 인류 최초의 독립 건축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500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는데도 보존 상태가 양호해서 놀라웠습니다.
중세 임디나
임디나는 제가 가장 가보고 싶었던 장소 중 하나였습니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몰타 기사단이 오기 전까지 이곳이 몰타의 수도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주로 귀족들이 거주했던 도시라서 '귀족의 도시(Silent City)'라고도 불립니다.
임디나 게이트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정말 중세로 시간 여행을 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좁고 높은 골목길은 화살 공격을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설계된 중세 방어 건축 양식입니다. 여기서 방어 건축 양식이란 적의 침입을 효과적으로 막기 위해 고안된 도시 구조로, 좁은 골목은 대규모 부대의 진입을 차단하고 높은 벽은 화살 공격에 유리한 지형을 만듭니다.
거리를 걷다 보면 또각또각 말발굽 소리가 들립니다. 관광객을 태운 마차가 지나가는 소리입니다. 저도 마차를 타봤는데, 라임스톤 건물 사이를 달리니 제법 운치가 있었습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 마부석에 같이 앉았는데, 마음만은 중세 귀족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해외에서 처음 타보는 마차는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4000년 역사가 숨 쉬는 도시를 마차를 타고 둘러보는 경험은 흔치 않으니까요.
임디나 옆 라바트에는 사도 바울의 지하 감옥이 있습니다. 지하로 내려가면 넓은 카타콤(catacomb) 공간이 나타나는데, 카타콤이란 초기 기독교인들이 사용하던 지하 묘지이자 은신처입니다. 한쪽에 철창으로 막힌 동굴이 있는데, 이곳이 사도 바울이 3개월간 머물렀다는 지하 감옥입니다. 예전에는 동상에 직접 손을 댈 수 있었는데, 손가락이 부러지는 사고 이후로 관람이 제한됐다고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몰타는 영국 식민지였기에 지중해 보급로를 차지하기 위한 격전지가 됐습니다. 몰타인들은 생존을 위해 지하에 은신처를 팠는데, 라바트 지하에서 그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공간이었습니다.
몰타는 작은 섬나라지만 5000년 역사가 켜켜이 쌓인 살아있는 박물관이었습니다. 몰타에서 어학연수 중인 친구가 있어서 여행 준비를 제대로 못 했는데도 걱정 없이 다닐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습니다. 택시 투어 기사님도 친절하셔서 숨은 명소까지 안내해주셨고 몰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습니다. 다만 5월 날씨는 관광하기 딱 좋지만 물놀이하기엔 좀 추웠다는 게 아쉽습니다. 다음에 다시 온다면 여름에 와서 코미노 섬에서 하루 종일 수영하며 지중해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습니다. 왕좌의 게임 팬이라면 임디나는 필수 코스로 드라마에서 봤던 장면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